전편 >> https://420611zip.tistory.com/234

 


 

 

 케이터는 누워서 밀린 마지카메 타임라인을 확인하고 있었다. 제대로 내용을 체크한다기 보다는 가만히 스크롤을 내리며 좋아요 버튼을 누를 뿐이었다. 대충 낮에 찍었던 사진을 갱신하는 것까지 끝낸 케이터는 멍하니 트레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까부터 열심히 과제를 하는 트레이 덕분에 케이터는 마땅히 떠들 상대도, 할 일도 없어 지루한 상태였다. 좀처럼 이쪽을 돌아보지 않는 뒤통수에, 그는 다시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마침 그 사이 새로운 마지카메 게시물이 올라와 케이터는 이번에도 아무 생각 없이 좋아요 버튼을 눌렀다. 테마파크 야경인가, 확실히 유명한 곳이라서 그런지 화려하네. 심드렁한 얼굴로 사진을 들여보던 케이터는 무언가 떠오른 듯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봤던 로얄 소드 아카데미의 야경이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온갖 건축물이 칙칙한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와는 다르게 로얄 소드 아카데미는 마치 궁전 같았다. 딱 한 번 본 것 뿐이지만 당시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의 장관이었다. 떠오른 김에 다시 보러 가곤 싶었지만 이 시간에 혼자 학교에 가기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케이터는 조용히 트레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이쪽에는 관심 없는 눈치였다.

 “트레이군, 그거 알아? 한밤 중에 학교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야경이 엄청 예쁘다는걸.”

 그제야 트레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눈동자가 마주친 순간 케이터는 아닌 척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아니. 밤에는 기숙사에 있으니까 한 번도 본 적 없어. 케이터는?”

 원하는 대로 대화가 흘러가자 케이터는 지난 밤 보았던 야경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엄청 화려하고 예쁜데 아쉽게도 사진을 못 찍었어~ 대충 이 정도까지 말하면 트레이는 분명 “그럼 같이 보러 갈까?”하고 말해줄 것이다.

 “흐응, 그렇구나.”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트레이는 이 이야기에 그다지 흥미가 없어보였다. 뭐야, 그 따분한 과제가 더 재밌다는 느낌? 그대로 다시 고개를 돌릴 것만 같은 담백한 어조에 케이터는 괜히 심술이 났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그는 핸드폰으로 트레이의 등을 푹푹 찌르기 시작했다.

 “아, 잠깐, 케이터 그거 진짜 아파……!”

 정말로 아팠는지 트레이는 기겁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 모습이 꽤나 우스꽝스러워 케이터는 저도 모르게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아, 트레이군 표정 진짜 웃기다! 2학년으로 진급한 이후에는 후배가 생겼다는 이유로 제법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던 트레이였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유치한 장난을 치는 건 오랜만인 것 같았다.

 “그럼 같이 보러 가자!”

 그래서 였을까, 오늘 밤엔 꼭 트레이와 함께 밤하늘을 날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지 않은 고집을 부리면서까지, 앞으로 3년하고 얼마 안 될 우정에 한 장이라도 더 많은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분명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추억이지만 나중에 남은 사진을 보면 지금 이 때를 떠올릴 수 있으니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트레이는 케이터와 함께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아직 비행술이 서툰 그를 위해 케이터는 제 뒤에 트레이를 태우고 하늘 위로 떠올랐다. 빗자루에 자신 외의 사람이 같이 타는 건 처음이었지만 생각보다 안정적인 느낌에 단번에 속도를 높였다. 거센 바람이 온몸을 감싸는 것과 동시에 제 옷자락을 쥔 트레이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 손길이 신경쓰여 뒤를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즈음, 저 멀리 로얄 소드 아카데미의 모습이 보였다. 달빛과 조명이 한데 섞여 옛 기억보다 훨씬 아름다운 그 풍경에 케이터는 다급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트레이군 저것 봐!”

 감탄사처럼 나온 말이었기에 딱히 대답을 기다리진 않았다. 케이터는 당장 핸드폰 카메라를 꺼내 전에 못 찍었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만족스러운 몇 장을 찍고 나서야 뒤 늦게 아무 말 없는 트레이가 이상해, 케이터는 고개를 휙 돌렸다.

 “내 말대로 엄청 예쁘지!”

 들뜬 마음이 그대로 새어나왔는지 저도 모르게 평소보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차 하며 입꼬리를 조금 누그러뜨리려고 했지만 일순 마주친 트레이의 표정에 그럴 생각이 사라졌다. 마치 무언가를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황급히 옆으로 시선을 돌리는 트레이를 보자, 괜히 장난기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적당한 수준으로 지우려던 설렘을 그대로 유지하며, 지금 자신의 감정대로 솔직하게 웃음 지었다.

 “응, 예쁘네.”

 지금 본 풍경을 떠올릴 때마다, 혹시 나도 같이 떠올려주지 않을까 하는 우스운 기대를 섞으며.

 

* * *



 “로얄 소드 아카데미 졸업생인가요?”

 사진을 감상하던 남자가 묻자 케이터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학교 건물이 예뻐서 찍은 사진이에요~”
 “그런 것치고는 제법 애정이 담긴 사진 같네요. 이런 건축물을 좋아하시나봐요?”

 어떻게 대답해야 떠오르지 않아 케이터는 대답 대신 옅은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웃음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남자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전시회가 끝나면 여행가고 싶다고 했죠. 갈 곳은 벌써 정했나요? 이런 건축물이라면 장미 왕국의 성도 엄청 유명하던데, 가본 적 있나요? 외관이 로얄 소드 아카데미랑 제법 비슷해요~”

 장미 왕국이라는 단어에 한 순간 케이터의 손끝이 움찔 떨렸다. 이내 그는 기다란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대답했다.

 “흠, 가본 적은 없는데 궁금하네요.”

 앗, 그럼……. 남자가 뭐라 말을 꺼내려 할 때, 케이터는 자연스레 핸드폰을 들어보이며 웃었다.

 “죄송한데 제가 약속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
 “아…….”

 가볍게 손을 흔들어보이며 케이터는 얼른 발길을 돌렸다. 그는 건물에서 나와 어느정도 거리가 떨어지자 골목 안쪽으로 향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담배 꽁초를 확인하고 나서야 코트 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익숙하게 불을 붙인 케이터는 한숨에 가까운 연기를 내뱉었다.

 오늘은 케이터가 참여한 사진 전시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젊은 작가들끼리 모인 작은 전시회였기 때문에 전시 기간은 짧았지만, 처음으로 제 사진을 전시한다는 뿌듯함은 존재했다. 그동안 찍은 사진은 수 백 수 천 장이 넘었지만 막상 남들 앞에 작품으로 내건다니 어떤 사진을 골라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더구나 작은 대관처였기에 케이터 이름으로 걸 수 있는 건 고작 두 장의 사진이 전부였다. 처음 한 장은 고민 없이 골랐지만 마지막 한 장은 선택하는데에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결국 고심 끝에 그가 고른 사진은 로얄 소드 아카데미를 담은 야경이었다.

 졸업 후 제대로 사진 공부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케이터는 홀로 현자의 섬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늦은 밤 남 몰래 거기까지 간 지 모르겠지만, 케이터는 다시 한 번 로얄 소드 아카데미의 야경 사진을 찍었다.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몸을 실은 빗자루가 가벼워진 만큼 그 감상도 가벼웠다.

 ‘응, 예쁘네.’

 멍하니 떠올린 생각은 언젠가 들었던 감상하고도 비슷했다. 그의 심플한 감상을 떠올리니 함께 하늘을 날던 날이 지난 밤처럼 선명히 그려졌다. 온몸을 감싸던 밤바람이, 달빛과 닮은 금빛 눈동자가.

 잊은 척 했던 사진을 5년만에 전시회 핑계로 끄집어 낸 것도 흔한 변덕이었다. 케이터 다이아몬드는 변덕이 심한 사람이었다. 손가락 사이에서 타들어가는 담배가 차츰 줄어들었을 때 그는 마지막 한 모금을 내뱉었다.

 “장미 왕국이라…….”

 

* * *



 전시회가 끝나는 마지막 날, 케이터는 예정대로 여행을 떠났다. 국경을 넘는 열차를 몇 번이고 갈아타며 도중에 싫증이 나면 빗자루로 하늘을 날아가며, 그렇게 며칠이 지나 도착한 곳은 장미 왕국이었다. 이름에 걸맞게 거리 곳곳에는 크리스마스 장식과 더불어 수많은 장미가 피어 있었다. 마법을 통해 계절에 상관 없이 1년 내내 피어있다는 장미를 보니 어쩐지 하츠라뷸 기숙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케이터는 성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숙소를 잡았다. 지면이 높아 도심부 어디에서든지 잘 보인다는 궁전은, 전에 들었던 것처럼 로얄 소드 아카데미의 건물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이쪽이 훨씬 더 화려하고 웅장했지만 대체적으로 새하얀 건축물로 이루어진 첨탑이라는 점은 비슷했다.

 괜찮은 숙소도 구했고 짐도 다 풀었으니 배라도 채울까. 그렇게 생각한 케이터는 호텔 서비스 대신 주변 구경도 할 겸 밖으로 나섰다. 연말이 가까워서인지 번화가에는 들뜬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어느 나라를 가든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다 이런 분위기구나. 핸드폰으로 근처 맛집 검색을 하면서 그는 멍하니 거리를 걸어나갔다.

 “케이터!”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아니, 어쩌면 장미 왕국에 오기로 마음 먹었을 때부터 정해져 있던 일인지도 모른다. 잠시 멈칫 했던 케이터는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발걸음을 나아가려고 했다. 그렇지만 금세 다가온 상대에게 팔을 붙잡혀 결국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아는 사람 한 명 정도는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바로 나타날 줄을 몰랐다. ……그것도 하필.

 “……트레이군.”

 하필 트레이 클로버일 줄이야.

 당황하긴 했지만 케이터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그를 대하려고 했다.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긴 두 사람은 어색하기 짝이 없는 대화를 나눴다. 하긴, 일방적으로 모든 연락을 끊은 상대가 갑자기 나타나면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아마 보통 사람이라면 당장 화부터 내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레이는 차분히 대화를 이어나갔다.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참 별난 사람이다.

 케이터는 졸업과 동시에 연락처를 바꾸고 지금까지 즐겨하던 SNS 계정도 삭제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모든 걸 자신의 선택으로 새롭게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어느정도 돈이 모였을 때는 바로 집을 나왔다. 그 후 조금이나마 흥미 있었던 사진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고 점점 거기에 즐거움을 느껴갔다. 그렇게 장래에 대해 희미하게나마 그림을 그려갔지만 어딘가 공허함은 존재했다. 이번 여행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5년 내내 사진에만 몰두하던 생활에 잠깐의 휴식을 갖고 싶었다.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어, 트레이군.”

 솔직히 대화의 대부분을 흘려듣고 있던 케이터는 이 이상 자리에 앉아있기가 민망했다. 차라리 화내는 게 더 마음이 편할텐데.

 “케이터.”

 자신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선 트레이는 무언가를 찾는 듯 코트 안 주머니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이내 원하던 걸 찾았는지 그는 케이터를 향해 명함을 내밀었다.

 “다음 주까지는 여기 있을 거라고 했지? 시간 될 때 연락해. 가게에 놀러 와도 좋고.”

 케이터는 잠시 명함과 트레이를 번갈아봤다. 이건 예의상 받아두는 게 좋을까, 그치만……. 잠시 고민하던 케이터는 이윽고 트레이의 명함을 받아들었다.

 “응. 시간 되면.”
 “ ……다음에 보자.”

 선택권은 나한테 있을 텐데, 그래도 너는 다음에 보자고 말할 수 있구나. 케이터는 인사 대신 가볍게 손을 흔들어보이곤 그대로 카페를 나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커피는 테이크 아웃으로 주문할 걸 그랬나. 아무래도 좋을 작은 후회를 하며 그는 다시 사람들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간단히 저녁을 먹은 케이터는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맥주 한 캔을 사왔다. 그는 샤워 후 머리도 말리지 않은 채 창가 앞에 섰다. 전망이 좋은 위치라서 그런지 장미 왕국의 성이 한눈에 잘 보였다. 밤이 되니 낮과는 달리 성 주변에 장식된 조명들이 눈부시게 빛나 언젠가 보았던 로얄 소드 아카데미를 떠올리게 했다. 잠시 창 밖을 바라보던 케이터는 대충 타올로 머리를 감싸올리고나선 맥주를 챙겨 다시 창가로 향했다. 그대로 창문을 열어젖히자 한겨울의 싸늘한 바람이 그의 온몸을 감쌌다. 갑작스레 들이닥치는 바람에 부르르 어깨를 떨었지만 이제 막 샤워를 끝낸 몸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멍하니 성을 바라보던 케이터는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시원한 탄산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지만 개운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맥주 캔을 반쯤 비우고 나니 어쩐지 입이 심심해졌다. 습관적으로 담배를 찾기 위해 벗어둔 코트 주머니를 뒤적이던 케이터의 손에 잡힌 건 낮에 받았던 명함이었다. 마저 담배를 챙긴 케이터는 명함을 들고 창가 쪽으로 향했다.

 케이터는 담배를 입에 문 채 명함을 살펴봤다. 트레이 클로버, 라고 정갈하게 적힌 이름 밑에는 그의 연락처가 써져 있었다. 익숙한 그 번호는 케이터가 기억하고 있던 학창 시절의 번호로부터 변하지 않은 상태였다. 연기를 내뱉으며 명함을 뒤로 돌려보니 그곳엔 클로버 베이커리라는 이름과 함께 매장 주소가 적혀있었다. 핸드폰으로 한 번 검색해보니 호텔 근처에서 버스를 타면 금방인 거리였다. 아니, 갈 것도 아니면서 왜 알아보는 건데……. 케이터는 자연스레 매장 길 찾기 버튼을 누르던 자신을 깨닫고는 다급히 핸드폰 화면을 껐다. 검게 변한 화면 위로 우스꽝스러운 얼굴이 보였다. 허둥지둥하다가 한숨을 내쉬는 모습까지. 본인의 얼굴인데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기 드문 표정들을 띄우고 있었다. 벌써 필터 앞까지 짧아진 담배를 재떨이에 짓이기며 케이터는 창 밖을 내다보았다. 밖에는 쉴 새 없이 굴러가는 제 이목구비와는 다르게 변함 없이 아름다운 야경이 펼쳐져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제대로 카메라 장비 챙겨올 걸 그랬나. 휴식이라는 목적에 맞게 옷과 간단한 생필품 외에는 전혀 가져오지 않았기에, 케이터는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핸드폰 카메라로 만족해야지…….”

 생각해 보니까 핸드폰으로 사진 찍는 건 오랜만일지도. 카메라를 사게 된 이후에는 주로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고, 마지카메 어플마저 삭제하니 핸드폰으로 사진 찍을 일은 거의 없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올린 핸드폰이었지만 어색한 기분이 쉴 새 없이 케이터의 가슴 속을 맴돌았다. 게다가 프레임 안을 가득 채우는 성의 야경을 보고 있으니 옛 추억이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한다. 지금처럼 온몸을 감싸는 찬바람, 등뒤에 바짝 붙은 타인의 온기. 눈부실 정도로 화려한 성, 그보다 반짝거리던 금빛……. 거기까지 떠올린 후에야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게 다 트레이군이랑 마주쳐서 그래. 애써 트레이의 탓으로 돌리며 초점을 잡아보려고 했지만 조금씩 손이 떨려왔다. 그러고 보니 그 때 찍은 야경, 결국 마지카메에는 안 올렸었는데. ……왜 그랬더라?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멋쩍은 마음에 괜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그는 사진 촬영을 포기하고 핸드폰을 내렸다. 창가에는 여전히 연기가 피어오르는 담배 꽁초와 재떨이, 맥주 반 캔과 트레이의 명함이 보였다. 케이터는 그 중 제일 위화감이 드는 걸 다시 손에 잡았다.

 케이터 다이아몬드는 변덕이 심한 사람이었다.


* * *



 케이터가 트레이를 찾아간 건 크리스마스를 훌쩍 지나 연말이 코 앞으로 다가왔을 즈음이었다. 바로 옆 골목에서 몇 번이나 거울을 보고 혹시나 담배 냄새가 나지는 않을까, 향수와 핸드크림을 한 번 더 쓰고 나서야 그는 가게 앞에 설 수 있었다. 일부러 매장 마감 시간이 10분 남았을 때까지 기다린 케이터는, 마지막으로 흘러내리는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긴 후 문고리를 잡았다.

 “어서오세—…….”
 “트레이군, 안녕.”

 마치 우리의 재회는 오늘이 처음인 것처럼. 케이터는 밝게 웃으며 트레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행히 트레이는 반갑게 그를 맞이해주었다. 아닌 척 잔뜩 긴장을 했던 케이터는 살가운 트레이의 반응에 한결 마음이 놓였다. 마감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케이터는 매장 의자에 앉아 트레이를 지켜보았다. 학생 때와 크게 달라진 점은 없는 짧은 머리에 똑같은 안경. 키는 전보다 조금 더 컸으려나. 성격은 변함 없는 것 같고, ……어쩌면 아직 나를……. 멍하니 자신이 알던 트레이와 지금의 트레이를 비교해보던 케이터는 문득 드는 생각에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제 와서 무슨 생각하는 거야, 바보 같이. 밀려드는 민망함에 괜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저녁은 먹었어?”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나온 트레이가 보였다. 스스로의 민망함과 싸우던 중 그의 모습을 보자니 괜히 떠보고 싶은 마음에 농담을 던져보았다.

 “아직. 트레이군이랑 같이 먹고 싶어서.”
 “뭐 먹고 싶어?”

 트레이는 금세 얼굴에 화색이 돌며 열심히 저녁 식사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기 시작했다. 5년이 지나도 트레이의 이런 점은 여전한 것 같았다. 과연 내 농담을 어디까지 받아줄까, 언제까지 화를 안 낼까. 그의 선이 궁금해졌다. 옛날의 자신이라면 절대로 알고 싶지도, 건들지도 않을 트레이 클로버의 내부를. 케이터는 습관처럼 제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와인도 마실까?”



 저녁 식사는 맛있었다. 트레이가 추천해준 가게 답게 맛은 물론 분위기까지 좋았다. 첫 만남의 어색한 대화가 없었던 것처럼 편안하게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트레이와 본인 앞으로 공평하게 와인 잔이 오가며 두 사람은 적당히 취기가 오른 상태였다. 케이터는 본인이 술이 그리 세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말하자면 주량은 보통 일반인 수준. 더군다나 성인이 된 이후 이렇게 트레이와 술을 마시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요컨대 트레이의 주량은 미지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그런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래, ‘케이터는 취했다.’는 분위기를.

 “데려다 줄게, 케이터. 숙소 어디야?”

 가게를 나와 비틀거리는 케이터의 모습에 트레이는 걱정스럽게 그를 부축했다. 케이터는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3번가에 있는 호텔…….”

 트레이가 자신을 데리고 무사히 호텔 객실까지 도착했을 때, 케이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렇다. 케이터는 현재 한껏 취한 척 연기하는 중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깜빡 속아 넘어간 트레이를 보며 그는 간신히 웃음을 참아내고 있었다. 이렇게 고생시켰는데 장난이라는 걸 알면 얼마나 당황해할까. 그래, 트레이군의 당황한 얼굴이 보고 싶었다. 이런 악질한테도 상냥하기만 한 트레이 클로버 말고, 다른 것도 보자. 조금만 보여주라. 침대에 눕혀진 케이터는 멍하니 트레이의 뒤통수를 응시했다. 눈을 깜빡거릴 때마다 그의 키가 커졌다 줄어들었다 하는 것 같았다.

 “……있지, 트레이군.”

 케이터는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이제 여기서 사실은 안 취했다고 비웃어줘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을 돌아보는 트레이와 눈이 마주치자 케이터는 어쩐지 정신이 멍해지는 것만 같았다. 눈부실 정도로 화려한 성, 그보다 반짝이는 금빛……눈동자. 얼마 전 떠올렸던 추억과 함께 아까 전의 감상이 다시금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짧은 머리에 똑같은 안경. 조금 더 커진 키, 변함 없는 성격에……어쩌면.

 “한 번만.”
 “……케이터?”
 “취한 척 안아줘.”

 어쩌면 아직 나를 좋아할까.

 과연 나는 언제부터 취해있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할 때쯤엔, 이미 두 사람의 혀는 진득하게 엉켜있었다.

 

 


2021.01.03

트레이 클로버 X 케이터 다이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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