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분명 자신 있었는데.

 에이스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제 앞의 리들을 내려다보았다. 혹시 잘못 들은 건 아닐까, 그게 아니면 이런 대답이 돌아올 리가 없는데. 아무래도 갑작스러운 제 고백에 당황한 리들이 말실수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기대를 품으며 에이스는 겨우 리들에게 반문했다.

 “제대로 못 들었는데, 뭐라고요?”
 “미안.”

 하지만 리들의 입에서 나온 건 명백한 거절이었다. 다시 한 번 떨어진 사과에 에이스는 머리라도 맞은 것처럼 얼빠진 얼굴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금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그야 당신은……. 차마 뒷말이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제 확신이 어긋났다는 걸 방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전하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거절 따윈 생각해본 적 없는 고백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리들에게서 돌아온 말은 에이스의 입장에선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스멀스멀 밀려오는 민망함에 에이스의 귓바퀴는 엊그제 간식으로 먹었던 체리파이만큼이나 붉게 물들어 갔다.

 이제 막 무너진 착각이라는 벽은 에이스의 위로 사정없이 떨어져 내렸다. 그 파편에 하나 둘씩 얻어맞을 때마다 그의 의식은 리들을 피해 저 멀리 튀어 올랐다. 혹시 지금까지 나 혼자 착각하고 설레발친 거였어? 에이스가 느릿하게 눈을 깜빡거릴 때마다 리들의 얼굴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변해갔다. 그 역시 생각지도 못한 에이스의 반응에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에이스?”

 제법 걱정스러운 리들의 말투에 그는 멀어져가던 정신을 겨우 붙잡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현실을 직시하자 느껴지는 건 크나큰 수치심이었다. 그치만 리들 사감은……. 연신 떠오르는 생각에 에이스는 결국 도망치기로 마음먹었다.

 “……사감 혹시 April Fool’s Day 몰라요?”
 “그건 4월 1일이잖아.”
 “어라, 오늘 1일 아니었어요?”
 “3월 31일이다만.”

 솔직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억지스러운 변명이었다. 남들이 듣는 다면 차인 주제에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냐고 할지도 모른다. 허나 상대는 리들이었다. 그가 에이스의 거짓말에 곧이곧대로 속아 넘어갈 가능성은 적어도 50퍼센트 가까이 되었다. 에이스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아~ 하루 착각했네~ 그럼 그 뭐냐, 예행연습인 걸로 칩시다.”
 “뭐?”
 “……오늘 애들이랑 다 같이 모여서 과제하기로 했거든요. 그러니까 이만 가볼게요.”

 괜히 있지도 않은 과제를 들먹이며 에이스는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성실한 리들이라면 과제 때문에 바쁘다는 후배를 붙잡아 세울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뭐라 대답이 들려오기도 전에 에이스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바로 발길을 돌려버렸다. 이 이상 리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좀 전에 했던 멍청한 고백이 다시 떠오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몇 발자국 뒤의 리들은 에이스의 이름을 불러 세웠다.

 “잠깐, 에이스――”
 “아, 그건 그렇고 사감도 조심해야겠네요~ 이런 거짓말에 홀랑 속아 넘어갈 정도면~”

 너무 순진한 거 아니야? 일부러 그에게 들리도록 피식 웃는 시늉을 하며 에이스는 적당히 손을 두어 번 흔들어주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는 그의 모습에 리들 역시 더 이상 에이스를 붙잡지 않았다. 걸음을 나아갈수록 제 행동에 대한 후회가 쉴 새 없이 피어올랐다. 분명 자신 있었는데, 사감은 기쁘게 받아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언젠가 제 머리를 쓸어 넘기던 상냥한 손길과 미소가 떠올라 에이스는 두 주먹을 꾹 쥐었다. 그치만 나 혼자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분명히, 아마도……

 ……리들 사감은 날 좋아하잖아?

 그에게 차이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착각은 자유라지만 이번에는 너무 자만했던 걸지도 모른다. 감정이 얼굴 위로 훤히 보이는 리들을 보며 자신을 좋아할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치만, 다른 후배를 대할 때랑 나를 대할 때랑 전혀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잖아. 특기인 마술을 보여줄 때마다 리액션도 좋았고? 유독 나한테만 깐깐하게 잔소리도 하고, 사감의 유니크 마법 발동 횟수는 단연 내가 1등인데. 그만큼 나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는 거 아니야? ……아니, 이건 아닌가. 아무래도 리들에 대한 생각을 지나치게 해버린 결과 혼자 깊은 착각의 늪에 빠져버린 걸지도 모른다. 애초에 리들은 단순히 사감으로서 같은 하츠라뷸생인 에이스를 봐준 것뿐인데. 단지 그뿐인데 혼자 우쭐해선 고백하고 차였다. 와, 지금 생각해보니까 나 완전 촌스럽네. 다시금 떠오르는 제 고백에 에이스는 그대로 땅굴이라도 파서 들어가고 싶었다.

 리들이 자신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작 그런 이유만으로 선심 쓰듯이 고백을 한 건 아니었다. 물론 첫인상부터 최악인 리들이었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에 대한 생각은 점차 긍정적으로 바뀌어져 갔다. 서로 성질이 다를수록 자석처럼 이끌린다는 말이 사실인지, 언제부턴가 자연스레 리들을 쫓는 제 시선은 지금으로선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마법사로서, 사감으로서 강인한 리들을 보며 동경에서 시작한 감정은 끝내 연애 감정으로 발전하고 말았다. 제 마음을 처음 자각했을 때는 어색하고 낯부끄러웠지만 에이스는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 나 리들 사감 좋아하네. 그런 결론을 내린 에이스는 고민 끝에 오늘 리들에게 제 마음을 고백한 것이었다.

 반쯤은 착각에서 비롯된 용기였지만 그래도 이렇게 깔끔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금처럼 후배라는 위치에서 만족할 걸. 농담이라고 둘러대기는 했지만 그 때 둘 사이에서 흐르던 어색한 기류는 여전히 생생했다. 솔직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뭐,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소용없지만.

 에이스는 복도 한 가운데서 우뚝 멈춰 섰다. 애초에 그의 발걸음에 목적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리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었다. 바쁘게 움직이던 걸음을 멈췄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감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어차피 끝난 일인데, 그렇게 깊은 감정도 아니었을 텐데. 평소의 본인과는 확연하게 다른 지금의 상태에 에이스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답답함의 이유는 뭘까. 거절당한 감정 때문일까, 그게 아니면 스스로 거짓말로 지워버린 감정 때문일까. 익숙하지 않은 감정의 파도가 에이스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끊이지 않는 잡념에 두통이 일 지경이었다. 몇 분간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던 에이스는 결국 무릎 위로 제 얼굴을 묻으며 주저앉고 말았다.

 아, 진심 최악.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 이곳이 방과 후엔 아무도 다니지 않는 복도라는 점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고백 장소를 물색할 때 사람이 잘 오지 않는 곳으로 정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자세를 낮춰봤자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가슴 부근에서 시작된 저릿한 통증은 두통과 함께 에이스를 괴롭혔다. 역시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안 된다. 고작 실연 한 번 당했다고 이렇게 혼자 드라마를 찍고 있다. 스스로 태클을 걸어봤지만 헛웃음도 안 나왔다.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아했나봐, 사감.”
 “에이스.”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에이스는 그대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 뒤에서 들린 소리가 극심한 두통에 따른 환청은 아닐까. 제발 잘못 들은 거면 좋겠다. 그게 아니면 아까보다 훨씬 더 쪽팔린 상황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애초에 언제부터 뒤따라온 건데……!?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생각들에, 에이스는 차마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지금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다면 밀려드는 수치심에 다시 한 번 도망쳐버릴 것만 같았다. 에이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리들 역시 충분히 그런 상황을 이해하는지 별다른 추궁 없이 에이스를 내려다보았다.

 “두 번까지는 용서하지만 세 번째는 없어.”
 “……네?”
 “네 거짓말 말이야. 오늘 나한테 두 번 거짓말을 했잖아? 오늘이 4월 1일인 줄 알았다는 것과, 지금부터 과제를 하러 간다는 것.”

 리들의 말은 정확했다. 에이스의 바람과는 달리 리들은 그의 거짓말을 완벽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4월 1일을 핑계로 고백을 없던 일로 했다는 것까지. 그렇기 때문에 에이스는 더욱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타르트에 오이스터 소스가 들어간다는 말은 믿는 주제에 왜 이럴 때만 예리하냐고, 불공평하게.

 “그리고 착각은 자유지만 상대방의 말은 끝까지 잘 경청하도록.”
 “……어차피 변하는 건 없잖아요.”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들려오자 에이스는 저도 모르게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착각은 자유, 그래서 지금 이 사단이 난 건데 말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사감 같은 사람을 좋아할 리가 없다고, 그런 착각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평생 자각도 못하고 그에게 느끼는 감정은 ‘동경’이라는 착각 속에서 평범하게 선후배 사이로 지냈을 지도 모른다.

 “성질 급한 면모도 고치는 게 좋아.”
 “사감도 한 성질하면서.”
 “뭐라고 했지?”

 다 들은 주제에 굳이 되묻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 지금의 리들은 평소처럼 짜증으로 인해 살짝 얼굴이 붉어졌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빨갛게 달아오른 리들의 얼굴이 떠올라 에이스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올 뻔했다. 하지만 여전히 고개를 들지는 않았다. 리들만큼이나 자신 역시 이상한 표정으로 감정을 삼키고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만 못 들은 걸로 해주지. 다음은 없어.”
 “그거 참 고맙네요.”

 다시 한 번 말꼬리가 잡힐까봐, 에이스는 일부러 목소리를 죽였다. 이번에는 그의 말대꾸를 못 들었는지 리들은 큼큼 목을 가다듬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네가 뭘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네 고백을 거절할 생각이 없었어.”
 “……네?”

 이건 또 무슨 농담인가. 에이스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언제부터 그의 앞에 눈높이를 맞춰 앉아있었는지, 순간적으로 마주친 리들의 눈동자에 에이스는 그대로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에이스의 얼굴이 보이자 그제야 리들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띄웠다.

 “그치만 미안하다고 했잖아요?”
 “당장은 대답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에이스는 리들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장 대답할 수 없으니 미안하다니, 그게 거절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리들은 그런 에이스의 생각을 읽어냈는지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너도 예상하다시피 나는 이런 경험이라곤 전무하니까, 실제로 에이스 너에 대한 감정을 인식했을 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지.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상담하곤 했어. 특히 케이터가 많은 도움을 줬지.”
 “……잠깐, 뭔가 대충 이미지가 그려지기 시작했는데요.”

 어쩐지 최근 들어 그를 보는 케이터의 눈길이 이상하긴 했다. 설마 자신을 주제로 리들에게 이상한 입김을 불어넣었을 줄이야. 에이스는 흐릿하게나마 리들에게 연애 조언을 해주는 케이터의 모습이 상상이 갔다. 그 사람, 분명히 쓸데없는 지식을 불어넣은 게 분명하다.

 “이런 건 밀고 당기기……? 그게 중요하다고 그랬어.”

 이것 봐, 내가 이럴 줄 알았다고! 에이스는 어쩐지 김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실연의 고통에 홀로 가슴을 부여잡고 슬픈 뮤직비디오의 주인공마냥 주저앉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평소엔 좋은 선배인 주제에 이런 중요한 부분에서 후배 괴롭히지 말라고! 에이스는 당장이라도 몇 분 전의 자신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아니, 뭐……. 케이터 선배도 설마 리들 사감이 밀고 당기기를 이런 식으로 활용할 줄은 상상도 못 했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니야? 생각할수록 민망함만 커져갔다. 에이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곤 제 앞의 리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건데요?”
 “응?”

 의아한 듯한 리들의 표정에 에이스는 붉어진 뺨을 숨기지도 못한 채, 기어들어갈 것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만큼 확 밀쳐놨으면 이제 당겨줘야죠…….”

 그만큼 작은 목소리를 용케 잡아냈는지, 리들은 새어나올 듯한 웃음을 참으며 마주 앉아있던 에이스의 팔을 자신 쪽으로 확 잡아당겼다. 갑작스레 한쪽으로 쏠린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리들과 에이스는 그대로 중심을 잃은 채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한 순간에 먼지로 더럽혀진 교복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오히려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전부터 느꼈지만 리들 사감, 생긴 거랑 다르게 과격한 거 알아요?”
 “너는 이렇게 쓸데없이 한 마디씩 많고.”
 “……그리고 밀당은 이거 한 번으로 됐어요.”

 평소와 다름없이 투덜거리는 말투였지만 듣는 누구도 그게 싫진 않았다. 웃음기 섞인 말투로 에이스는 리들을 향해 다시금 제 마음을 전했다.

 “좋아해요, 리들 사감.”

 이번에는 착각이 아닌 확신을 안으며.

 


2021.03.31

에이스 트라폴라 X 리들 로즈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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