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Posts
TEXT/:: 오늘의 센유우
유우마가 감기에 걸렸다. 연일 이어진 마감과 불규칙한 생활 습관으로 약해진 면역력이 원인이었다. 동시에 탈고 이후 그간 쌓인 피로가 한 번에 밀려온 결과는 제법 심각한 감기 몸살이었다. 그 날 아침따라 영 일어나지 않는 유우마를 이상하게 여겨 이불을 들춰 본 센리는 그대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체온계로 재보지 않아도 펄펄 끓는 열로 온몸이 식은땀 투성이였고,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묵직한 숨을 내쉬는 유우마는 딱 보기에도 중증이었다. 센리는 울 것 같은 얼굴로 구급차를 부르려고 했지만 힘겹게 뱉어낸 유우마의 만류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얼마 전 주연극이 끝난 센리는 당분간 스케줄이 없었다. 덕분에 하루종일 유우마의 옆에서 그를 간호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애초에 유마삐가 내 이야기를 안 들어줬으니까. 센리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제 무릎을 끌어안았다. 얼굴을 허벅지에 반쯤 묻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지만, 딱히 화면 안에 집중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곁눈질로 유우마의 작업실 쪽을 힐끔 훔쳐봤다. 굳게 닫혀있는 문은 마치 자신에 대한 유우마의 마음처럼 느껴져서, 센리의 입에선 한숨만 나왔다. 상황을 조금 전으로 돌아가 보자면, 센리는 지금처럼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작업실 안에 있는 소파에 누워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건 그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였다. 소파에 누웠을 때 바로 앞에 보이는 건 유우마의 뒷모습이었다. 작업에 집중하느라 앞으로 기울어지는 등을 보면 건강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좋아하는 것에 열중하는 유우마를 보는 건 즐거웠다. 때때로 굳은 ..
그러니까, 두 번째 줄의……. 홀로 중얼거리며 책을 들여다보던 센리는 잘 되지 않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니토.” 문득 들려온 제 이름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유우마의 양 손에 가득한 짐은 제법 무거워 보여서, 센리는 품에 끌어안고 있던 기타를 치우고 벌떡 일어났다. “유마삐 어서 와! 근데 이건 다 뭐야, 안 무거웠어?” “화방 가는 김에 근처 서점도 갔으니까. 요괴 농구 외전도 사왔어.” “앗 그거 벌써 단행본 나왔구나~ 유마삐 다 읽으면 나도 읽어도 돼?” “응. 근데 니토, 웬 기타?” 유우마는 센리가 방금 전까지 만지작거리던 통기타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분명 원래 집에 있던 물건은 아니었다. 손때가 거의 타지 않은 바디를 보니 아마 산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사실 이번에 맡게 된 ..
“유마삐, 건조대에 있던 건 다 걷어왔어!” “그럼 이 쪽으로 갖다 줘.” 옷이 한가득한 바구니를 들고 센리는 유우마 쪽으로 다가갔다. 바로 옆에 빨래 바구니를 내려놓은 센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유우마의 옆구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니토, 움직이기 불편해.” “그치만 간만에 쉬는 날인 걸~ 유마삐랑 꼭 붙어있을래! 아니면 데이트하러 갈까?” “오늘 비 온다고 그랬어.” 센리의 늦잠으로 보지 못한 일기예보였다. 비라는 말에 그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유우마를 놓아주었다. 겨우 자유로워진 팔로 빨래를 개는 그의 모습에 센리 역시 하나 둘 옷가지를 개기 시작했다. “유마삐랑 나는 체격이 비슷해서 가끔 어떤 게 누구 옷인지 구분이 안 가는 것 같아.” “니토 옷이 좀 더 작을걸.” “그래도 나 예전보다 키도 많..
“유마삐 동전!” 마트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센리는 유우마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유우마가 건네준 동전을 건네받은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카트들이 줄지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지갑은 유마삐, 카트는 나! 동거를 시작한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마트에 왔을 때 정한 룰이었다. 이쯤 되면 그냥 본인도 동전을 들고 다니면 될 텐데, ‘가족 같잖아.’라는 이유 하에 센리는 항상 유우마에게 동전을 받아갔다. 잠시 근처에서 세일 전단지를 살펴보던 유우마는 곧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요란한 카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슈웅~” “니토, 그러면 위험해.” 일직선상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센리가 한 발로 카트를 박차며 탈 것이라도 타는 듯이 속도를 내고 있었다. 저러다 어디 부딪치면 어떡하려고. 천진난만하게 만면에 웃..
희미하게 들려오는 콧노래 소리와 코를 자극하는 향기. 아니, 냄새였다. 졸음 너머로 아득했던 의식을 붙잡자마자 유우마는 눈을 떴다. 분명 제 옆에서 자고 있을 센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선명하게 풍겨오는 냄새. “타는 냄새…….” 그는 대충 근처에 있던 옷을 주워 입고 방을 나섰다. 문을 열자마자 거실 쪽에 서있는 센리의 뒷모습이 보였다. 어쩐지 그 주변에 희미하게 연기가 껴있는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확실해지는 탄 냄새에 유우마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니토, 또….” “으악, 유마삐 벌써 일어났어…!?” 딱히 기척을 숨긴 것도 아닌데,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센리는 유우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돌아섰다. 그의 손에는 새까맣게 타 본연의 존재를 알 수 없는 유해물질이 들..
혹시 나 오늘 많이 피곤한가? 문을 열자마자 펼쳐진 광경에 센리는 손등으로 눈가를 비볐다. “아. 니토 어서와.” “다녀왔어, 유마삐! 근데 그, 품 안에…….” 야옹— 센리의 물음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이, 유우마의 품에 안겨있던 노란 고양이가 울었다. 고양이는 센리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리.” “하리……가 갑자기 왜…?” “얘 이름이 하리야. 미케카도 선배가 출국 때문에 며칠간 부탁한다고 했어.” 듣고 보니 묘하게 낯이 익었다. 몇 번인가 선배 SNS 계정에서 본 기억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름이 ‘하리’라는 건 지금 처음 알았지만. “하리는 어쩌고? 아, 지금 말한 건 토우지 쪽!” “하리미야도 미케카도 선배와 동행이라는 것 같아. 기념품 기대하래.” “헤에, 잘 됐네. 동행이라..
“다 했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유우마의 손이 멈췄다. 내내 굳어있던 몸을 풀기 위해 머리 위로 쭉 기지개를 켰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아 예상보다 목표 분량을 빨리 끝냈다. 조금 더 욕심을 내서 작업을 진행할까 생각하다가 그냥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중력이 끊어지지 않도록 장시간 펜을 잡고 있었더니 이제 와서 허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밥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라 뭔가 가볍게 속을 채울 간식이 없을까 싶어 유우마는 주방으로 향했다. 마침 얼마 전에 토우지에게 선물 받았던 고급 제과를 발견한 유우마는 함께 마실 음료를 챙겨 거실 소파에 자리 잡고 앉았다.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이 있던 건 아니라 목적 없이 채널을 돌리다 일기 예보 소리에 손을 멈췄다. 《 —바람이 불기 시작해, 밤부터 비가 내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