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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드리밍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는 센리에게 이미 익숙한 소음이었다. 거의 매일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스케치를 하는 유우마의 곁에는 항상 센리가 있었다. 평소처럼 열심히 노트를 채워가는 유우마의 옆에서, 센리는 책상에 반쯤 얼굴을 묻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1학년 때부터 세트 취급을 받던 두 사람은 3학년의 끝자락이 된 지금도 여전히 함께였다. “유마삐 요괴바스 그리는 거 오랜만이네~” “완결 소식 듣고 1권부터 다시 읽느라 바빴으니까.” “마지막 권은 3월 발매였던가?” 유우마는 센리 쪽을 보지도 않고 응, 이라며 짧은 대답을 뱉었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의 그는 언제나 그랬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조금 흘려듣고는 했다. 가만히 유우마의 옆모습을 보던 센리는 밑으로 시선을 옮겼다. ..
러브 시나리오 上 >> https://420611zip.tistory.com/172 “그동안의 방법은 아무래도 잘못된 것 같아.” 라운지에 멍하니 앉아있던 센리가 문득 입을 열었다. 내내 포카리를 마시던 유우마 역시 그의 말에 안색이 어두워졌다. “영화 보다가 잠든 건 미안….” “아니, 아니, 유마삐 잘못이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사과에 잔뜩 당황한 얼굴로 손사레를 쳤다. 그럴 의도로 한 소리가 아닌데 말이지…. 크흠, 한 번 헛기침을 하고 나서야 그는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화면 너머로는 역시 조금 집중하기 어렵잖아?” “……?” “직접 경험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 사실은 핑계다. 이미 그를 위한 연애 강습이라는 건 다 소용 없지 않나 싶었다. 시작은 순수하게 도움을 주고 ..
2019년 4월 27일 모온페에서 발간했던 센유우 소설 《 러브 시나리오 》입니다. 센리 생일을 기념해서 웹공개로 돌립니다. 구매해주시고 읽어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길이상 글을 나눠서 올립니다... “으악, 죽었다~” 화면 속에서 현란하게 움직이던 캐릭터는 정면에서 한꺼번에 날아오는 탄환들을 피하지 못해 죽고 말았다. 곧바로 화면에 커다랗게 표시되는 GAME OVER 라는 문구에 센리는 탄식을 뱉었다. 하여간 슈팅 게임은 나랑 안 맞는다니까. 작게 투덜거리던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캐릭터가 애잔하게 느껴져 스마트폰 화면을 꺼버렸다. 그대로 책상에 턱을 받친 센리는 텅 빈 교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보충 수업이라고 남겨놓은 주제에 여전히 모습을 보이지 않는 담임을 떠올리며 그는 무료함에 입술을..
5엔 초콜릿의 맛을 기억하나요 “니토 센리 초콜릿 절찬 모집중!” 그것은 평소와 다름없는 관심 끌기 대사였다. 오늘 같은 기념일엔 더욱 더 모두의 관심이 고픈 천진난만한 남고생이니까. 더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엎드려 절 받기라도 기쁘잖아. 의리 초콜릿이라도 문제없음! 오히려 대환영! 그렇게 생각하며 센리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의 유우마를 힐끔 쳐다보았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기숙사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 덕분에 유우마 역시 그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손을 흔들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좋은 아침, 니토.” “유마삐 좋은 아침!” “니토. 이 초콜릿 받아줘.” 이제 막 인사를 나눴을 뿐이었다. 갑작스럽게 제 앞으로 내밀어진 초콜릿에 센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응? 뭐지? 어젯밤 설렘에 잠을 ..
* 캐붕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럼 진 씨, 모쪼록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래. 내가 없는 동안 잘 부탁한다.”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던 치즈루가 몸을 일으키자 진 역시 가볍게 말을 건넸다. 이윽고 뒷좌석의 창문이 올라가고 진이 타고 있던 검은색 리무진은 출발했다. 시야에서 차가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치즈루는 리무진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야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부터 진은 본사 업무를 위해 로스앤젤레스로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긴 시간 자리를 비우는 건 아니었지만, 진이 귀국하기 전까지 치즈루에겐 단기 휴가라는 명이 내려졌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곁에서 그를 모실 수 없다는 사실에 우울함에 빠져있을 테지만 지금의 치즈루는 한층 성장해 있었다. 휴가 역시 최상의 컨디션으로 주..
누군가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 언젠가 누구라도 사랑을 한다. 내가 너를 발견한 것처럼. “있지, 유마삐는 운명이라는 말을 믿어?” 센리는 종종 ‘운명’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곤 했다. 연기를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보통 고교생에 비해 감수성이 풍부한가 보다. 그에 대한 유우마의 감상은 단지 그것뿐이었다. 처음에는. 그러고 보면 첫 만남부터 인상적인 이미지였지. 이따금씩 눈을 감으면 그 날의 기억이 유우마의 머릿속에 그려지곤 했다. 모든 것이 새로운 도쿄에서의 첫 날. 벚꽃이 만발한 낯선 등굣길. 먼저 자신을 불러 세우던 목소리. 나 이런 우연한 만남 같은 거, 소중하게 여기고 싶은 타입이거든.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 말은 여전히 선명하게 제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니. 그건 우연 같은..
“이제 카스카하고는 끝이야.” 평소와 다르게 제법 진지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본다 싶더니, 미나토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말 예측하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그가 할 줄 아는 말은 프랑스어와 어린 아이 수준의 언어 밖에 없다고 단정 짓던 카스카였다. 미나토가 뱉은 말은 어려운 의미 없이 분명 그 말 뜻 그대로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카스카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에게 되물었다. “……그건 무슨 뜻이지?” “카스카는 맨날 나한테 화만 내고 싫어하잖아. 그래서 나, 새로운 애인을 만들어버렸어.” 그래. 언젠가 이 녀석도 나에 대해 질릴 거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고하는 이별의 이유가 ‘새로운 애인’이라니. 정식으로 사귀기 전엔 곧잘 야나기와 함께 여자애들 사이에서 헤실거리던 모습을 떠올리면, 인기..
“……시구레, 자?” 방안의 모든 불이 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문득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시구레는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아뇨. 그는 짧게 대답하며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몸을 돌려 누웠다. 어둠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신야 역시 옆으로 몸을 돌리고 자신 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잠이 안 오나요?” “응, 조금…. 미안. 혹시 내가 깨웠어?” 걱정이 서린 목소리에 시구레는 그를 안심시키듯이 살며시 소리 내어 웃었다. “나도 마침 잠이 안 오던 참이야.” “다행이다…. 아니, 불면증이라면 다행이 아닌데. 으아….” “제 불면증은 항상 있는 일이니까요.” 정말, 또 그런 소릴— 신야는 시구레의 대답에 바람 빠진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당당히 말해도 의사 입장에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