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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색과 닮은 푸른 하나뿐인, 나에게 있어서 첫사랑 평소처럼 자율 연습 후 목욕을 마친 하루이치는 한껏 상쾌한 기분으로 음료수 자판기 앞에 섰다. 어디 보자, 동전이…. 주머니를 뒤적이던 그는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그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자판기와 자판기 사이,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무릎에 머리를 뭍은 채 조용히 웅크려 앉아있는 건 후루야였다. 한밤중에 왜, 아니 그것보다 잘도 그런 좁은 곳에 들어갔네….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마이너스 오오라를 눈에 띄게 전신에서 풍기는 모습에 하루이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후루야군, 거기서 뭐해…?” 들려오는 목소리에 후루야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루이치를 올려다보았다. 언뜻 보면 무표정해보이지만 그는 겉으로 기분이 잘 드러나는 편이었다. 시무룩한 얼굴로 하루..
2016년 8월 디페스타에 나왔던 토마나라 《나의 행복을 소개합니다.》 웹공개합니다. 원고에서 줄간격만 수정했고 나머지는 그대로입니다. 더보기 미카도시의 겨울은 한없이 차가웠다. 이제는 텅 빈 방위구역 건물 사이로 바람이 불면 언제나 괴기한 소리가 근방에 울려 퍼졌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리는 토마 이사미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였다. 남이 들으면 취향 한 번 이상하다는 말이 따라오기도 했지만 어찌 됐든 그에겐 상관없었다. 본부와 집을 오가는 그 길은 토마에게 묘한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진즉에 해가 저문 하늘 아래, 불빛이라곤 한 줌 없는 공간에는 달빛을 받은 두 사람의 그림자가 아스팔트 바닥 위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는 제 옆의 연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추위를 잘 타는지 ..
“사실 우리 사귀는 사이야~” 뜬금없는 토마의 선언에 나츠메는 그와 호카리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표적에 스마일 마크를 완벽하게 새겼을 때처럼 자랑스럽게 웃어 보이는 토마와, 갑작스럽게 어깨를 끌어당겨졌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불쾌한 기색 없어 보이는 호카리의 표정에 나츠메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옷- 리젠트 선배는 역시 그쪽 취향이었군요.” “그리고 4월 1일이지, 오늘은.” 자연스레 어깨에 걸쳐진 토마의 팔을 치우며 호카리가 말을 덧붙였다. 뭐야, 떠벌리는 게 너무 빠르잖아. 아쉬운 기색 하나 없이 바람 빠진 휘파람을 부르며 토마가 머리 위의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그럼 그렇지, 그런 둘을 앞에 둔 나츠메 역시 재미없다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즈마의 지휘 아래에 이루어지던 합동 훈..
“아.” 둥그런 뒤통수가 보이자 무심코 아라후네의 입에서 소리가 나왔다. 가까운 거리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상대 역시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라후네 씨도 본부 가는 길이세요?” 그린 듯이 단정한 이목구비가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꾸벅이며 가볍게 인사를 한 나라사카가 아라후네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가 몸을 움직이자 부드러워 보이는 머리카락의 결이 넘실거렸다. 아, 뭐. 아라후네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흐렸다. 그제야 그의 시야에 자신과 같은 교복을 입은 나라사카의 모습이 비쳤다. 그러고 보니 같은 학교였지. 아라후네는 어색하게 그의 옆에 섰다. 같은 진학 고교에 다닌다고 하더라도 학년이 다른 그들은 교내에서 마주치는 일이 적은 편이었다. 그렇기에 같은 보더 본부 소속의 대원이었지만 아라후네와 ..
테이블 위의 선물 상자 하나를 앞두고 나라사카는 줄곧 고민하고 있었다. 선뜻 손대지 못하고 그저 팔짱을 낀 채 상자를 바라보던 나라사카는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를 맞이하여 거리의 상점들에는 온갖 형태의 초콜렛이며 과자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리고 그가 잠시 들렀던 편의점 역시 시답잖은 기념일을 겨냥한 초콜렛들이 상품 진열대 중심에 가득 자리했다. 평소 기념일들의 날짜를 기억한다거나, 특별히 누군가를 챙기는 일 없이 매번 의미를 두지 않고 지내온 나라사카였지만 올해의 그는 조금 사정이 달랐다. 제과 회사들이 앞다투어 내놓은 상품답게 손바닥만 한 상자는 정성스럽게 포장되어 있었다. 고급스러운 빨간 색지에 노란 리본으로 장식된 상자는, 남들이 보기엔 누군가가 나라사카에게 준 선물 ..
손바닥 위로 떨어진 빗방울은 금세 손금 마디마디를 타고 흘러내렸다. 불쾌할 정도로 습한 감각에 나라사카는 뻗었던 손을 거두었다. 분명 일기 예보에 비 소식은 없었을 텐데. 돌연 찾아온 겨울비에 나라사카는 텅 빈손으로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평소 일기 예보를 챙겨본다고 해도 예고 없이 내리는 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거세게 쏟아진 비는 우산이 없는 나라사카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더욱 빗줄기가 굵어졌다. 늦게까지 남아있던 건 괜한 일이었을까. 합동훈련이 끝나고 꽤 지난 시간이었기 때문에 우산을 빌릴만한 사람은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맨몸으로 빗줄기를 뚫고 나가기엔 가방 속의 내용물은 젖기 쉬운 종이가 대부분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예비 우산이라도 들고 다녔으면 좋았을 것..